제19화 마르스를 놓아주었다 바이바이, 마르스





머리를 위로 묶어 포니테일로 만들고, 도수 없는 안경을 썼다.
이것만으로도 인상이라는 것은 대부분 바뀌는 것이다.
옷은 지금까지 흰 드레스에서 흰색 튜닉과 검정색 바지로 바꾸고, 그 위에 지금까지와 같은 진홍색 외투를 걸쳤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전신을 숨기지 않고 날개만 숨길 뿐이다.
마지막으로 디나가 날개에 붕대를 감아 검은 날개를 숨겼다.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도 날개 자체가 눈에 띄지 않았고, 천익족인 것조차 남의 눈으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이건 메그레즈가 준비해 준 것이고, 그가 연성한 위장 아이템이다.
『 스텔스 』의 마법이 걸린 듯, 이를 두른 부위는 주위 경관과 동화되어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 지금까지와 같은 모습으로는 움직이기 힘들겠지 』라며 새로운 의상과 아울러 후한 선물을 준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흐음, 어떤가 메그레즈. 어울려 보이나?」

「그래, 너는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군.」


메그레즈 덕분에 셀프 구속 플레이에서 탈출이다.
아니, 솔직히 여기까지 해줄 줄은 몰랐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갑자기 부활한 과거의 원수로써 적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터.
그런데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니 너무나도 고마워서 거꾸로 함정인 게 아닌가 의심해버린다.


「이봐, 루파스.」

「응?」

「너는……우리들을 원망하지 않는 것이냐?
그때 너는 틀림없이 네가 바랐던 이상에 손이 닿는 곳까지 갔었다. 네가 목표로 한 미래에 이르기 직전이었다.
그것을 망친 것은 우리들의 배신이었다……너는, 그것을, 우리들을, 증오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메그레즈의 말에 나는 조금 생각했다.
밉다 뭐다 하는 마음은 나에겐 없으며, 미워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 있어 그 전쟁은 그저 게임이었을 뿐, 실제로 체험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나 나름의 대답을 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국민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여가 왕에 걸맞지 않아서였겠지.
그대들이 여에게 불만을 느껴 궐기했다는 건, 그렇게 만든 여의 그릇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대들을 미워할 이유 따위 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여러 각도에서 포즈를 취한다.
음, 제법 좋지 않은가 이거.
움직이기 쉽고, 무엇보다 잘나 보이잖아.
여전히 뛰어난 외모 덕에 눈에 띄는 일은 불가피하겠지만 전신이 빨간 망토의 수상한 사람보다는 10배는 낫다.
아니, 그렇지만 내가 말하기는 뭣하지만 말야 아무리 그래도 화장 없이 이 얼굴은 반칙이잖아……포토샵으로 편집한 아이돌 사진이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일만한 레벨이라니 어쩌자는 거야.


「그러니, 그대도 자신을 끊임없이 질책하는 건 그만두었으면 한다.
솔직히, 안쓰러워서 보기 힘들군.」


루파스는 침략자이고, 이 녀석은 그것을 쓰러뜨린 영웅.
200년 전의 일은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시대는 언제나 승자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패자인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긴 쪽이 언제까지고 고민한다는 것은 근본이 어긋난 일.


「그대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영웅이다.
당당하게 행동해라. 200년 전과 똑같이.」

「충고해주니 황송할 따름이군…………고맙다.」


메그레즈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돌아왔다.
이 고지식한 녀석이라면 앞으로도 고민하겠지만,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오히려 정말 사과해야 하는 것은 이쪽이다, 특히 구석에 움츠리고 있는 저 성별 사칭 양이야말로 메그레즈에게 사과해야겠지만…….
그러나 아리에스는『 주인을 배신한 상대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아 』라며 떼를 썼기 때문에 아직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메그레즈에게 하지 않았다.


「자, 그럼 여는 슬슬 출발하겠다.
아리에스가 약화시켰던 레비아는 저것으로 괜찮겠지.」

「감사한다. 지금의 나로서는 줄어든 최대 HP까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아리에스의 공격으로 최대 HP가 떨어진 레비아이지만, 아무래도 재료가 되는 물만 있다면 회복이 가능한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메그레즈는 회복은 가능하지만, 재연성으로 완전히 복원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그것만은 내가 해주었다.
그런데 물로 수리가 된다니 수수하게 편리하군.
일단, 레비아에 관해서는 이것으로 문제없을 것이다.


「루파스.」

「응?」

「……좋은 여행을.」

「말할 필요도 없지.」


메그레즈의 격려를 받고, 나는 무심코 웃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메그레즈의 집을 뒤로했다.
그대로 곧장 귀족구를 빠져나가 상업구를 걸었다.
도중, 특징적인 대머리의 간츠를 발견한 나는 그에게 작별을 고할 생각에 조금 돌아가기로 했다.


「간츠!」

「응?, 우오! 굉장한 미인이잖아!?
아, 아가씨,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이봐 이봐, 이제 와서 그런 말투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봐라, 여이다, 스팔이란 말이다. 도시에 왔을 때는 신세를 졌었다.」

「……에? 에, 에에에에에에에에!?」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간츠는 말문이 막혔고, 그리고 다음 순간 큰소리로 외쳤다.
그런가 간츠에게는 맨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가.
이거 좀 실패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이제 스발린국은 떠날 예정인 걸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스, 스팔이라니. 그 수상한 빨간 망토!?
당신 이런 미인이었어!?」

「하하하, 칭찬마라 칭찬마.
이제부터 이 나라를 떠나게 되었으니 인사나 하고 갈까 생각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간츠 씨, 저희는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놀란 간츠를 보며 나는 웃었고, 디나가 이별을 고했다.
아리에스는……부담스러운지, 내 뒤에 숨어 얼굴조차 보이려 하지 않는다.
완전히 소동물화했군, 이 녀석.


「어, 어어, 그런가. 이제 떠나는 건가.
 두 사람 다……그리고 거기 귀여운 아가씨도 조심하라고.」

「이 녀석 남자야.」

「진짜!?」

「하하하. 그러면 간츠.
또 인연이 있으면 어딘가에서 만나지.」

「아, 아아…….
스팔…………아니, 여하튼 건강하라고! 조심하고!」


간츠에게 이별을 고하고 우리는 스발린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간츠가 나한테 무언가 묻고 싶어 하 듯 보였으나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마 그 전쟁에서 내가 아리에스를 발로 찬 것을 묻고 싶었던 것이었겠지만, 이쪽에도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 주었는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혹은 어쩌면 나의 정체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남자였다. 그는 장수해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디나. 목적지는 이곳보다 500㎞ 떨어져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여는 도보로도 전혀 상관없다만.」

「네! 제안이 있습니다! 저희를 태우고 이동해줄 골렘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뭐냐, 도보는 싫은 것이냐?」

「싫어요! 피곤하단 말이에요!」


스발린을 나오니 거기서부터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길 같은 것은 만들어져 있지만 이를 계속 걷는다면 우울해질 것만도 같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얼마나 걷던 피로하진 않을 것 같아, 이건 이거대로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이 거리를 도보로 여행한다니, 낭만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디나는 싫은지, 나에게 골렘을 만들도록 요구해왔다.


이 세계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골렘은 게임에서만큼 바보는 아닌었는 지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었다.
설명하자면, 게임에선 생각 없이 적에게 돌격하고 마음대로 공격하는 것을 반복했는데, 여기선 레비아가 제대로 메그레즈의 지시에 따랐던 것처럼 꽤 똑똑한 행동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상에 제한 같은 것이 없다. 즉, 차의 형태로 만든다면 자율주행하는 차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디나의 요구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묻는다면 여유롭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흐음, 정 그렇다면 만들어 볼까.」

「이왕이면 노숙같은 것을 하지 않도록 잠자리나 목욕탕 같은 것도 함께 만들어 버리죠.」


디나가 뭔가 가볍게 요구를 업그레이드했다.
적당히 오픈카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지만, 이런 요구라면 캠핑카가 되어버리고 만다.
아리에스를 보니 그는 자기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도,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만들지가 즐길거리, 라는 건가.


「뭐, 한번 해볼까…….」


먼저 차를 만드는데 꽤 비중을 차지하는 철이다만, 이건 적당히 이 근방의 바위에 포함되어 있는 광석을 재료로 하면 되고.
가구에 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겠지.
목욕은 일단 그것을 위한 방을 하나 만들어서 철제 목욕통이라도 만들면 좋을까나.
이 세계의 목욕통은 평범하게 철제 목욕통 방식이다. 편리한 현대식 목욕통 따위 있을 리가 없고, 나도 그것의 자세한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재현할 수가 없다.
침대는……주변의 나무들을 뼈대로 해 형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위에 깔 요와 덮을 이불이다.
이것만은 나무와 바위, 거기에서 발전한 콘크리트나 철을 재료로 한들 만들 수가 없다.
면이나 깃털이라도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아.」

「? 왜 그러세요. 루파스님? 제 얼굴에 뭔가…….」


바로 가까이에 있었지, 솜.
좋아, 나중에 아리에스에게는 양으로 돌아가라고 한 뒤에 털을 깎아주자.
재료는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재료는 갖추어져 있다.
이것이라면 웬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연성!」


우선 이 근처의 바위에 포함된 광석을 철로 연성.
재료를 연성하여 다른 재료로 연성하는 것은 연금술사의 기본 중 하나이다.
다만, 연성하여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은 클래스 레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초기에는 재료를 재료로 바꾸는 연성조차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자르처럼 클래스 레벨을 200까지 올린다면 이 근방의 바위에서 전설급의 금속까지 만들수 있으니 실로 대단한 것이다.
나는 100으로 끝내기에 거기까지는 안 되지만 말야.


방금 만든 철을 다시 연성하여 캠핑카를 만든다.
라고 해도, 나는 차의 자세한 구조 따위는 모르기에 까놓고 말하자면 차의 모양을 한 철 덩어리이다.
이동은 완전히 골렘의 자율주행에 맡길 것이므로, 운전석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다음에 유리를 이 근처의 모래로 연성하여, 창문으로 붙인다.
내부에는 몇 개의 방을 만들어 그중 하나에 큰 솥 모양의 철제 목욕통을 설치.
내친김에 부엌도 적당히 만들어 둘까. 전기스토브 같은 훌륭한 것은 만들진 못하지만.
전 시대적인, 이 세계의 문명 레벨에 맞는 부엌이다.


「다음은……아리에스. 양으로 돌아가라.」

「에?」

「그대의 털을 사용한다.」


양 형태의 아리에스의 사이즈를 생각한다면 정말 조금 털을 깎을 뿐이고 게다가 어차피 나중에 자랄 것이다.
나의 명령으로 양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리에스의 위에 뛰어올라 손칼로 털을 적당히 깎고, 이번에는 그것을 재료로 이불을 만든다.
이 세계에서 본다면 놀랄 만큼 사치스럽고 푹신푹신한 침대가 될 것이다.
하는 김에 나무 의자도 만들고, 그 의자 위에도 아리에스의 털로 쿠션을 만들었다.


「좋아, 우선 이런걸로 괜찮겠지.」


여러 가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어딘가의 거리에서 더 사면 된다.
요점은 달리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어디, 모처럼 만든 캠핑카 성능도 체크해 둘까.
아, 그리고 이름도 안 붙일 수는 없지.
골렘은 연성 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게임에선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의 골렘이 여기저기 있었다.
건○ 이라던가 겟○ 라던가, 그런 거.
그런데 이 녀석의 이름은 어떻게 하지.
너무 튀는 이름은 아닌, 그렇다고 잊어버리기 쉬운 이름도 아닌…….


……귀찮다. 다나카면 되겠지.


【다나카】

 레벨 200

 종족 : 인공생명체

 HP  12000
 SP      0
 STR(공격력)  555
 DEX(기용도)  120
 VIT(생명력)  658
 INT(지력)      9
 AGI(기민함) 1020
 MND(정신력)   75
 LUK(행운)    100


아무래도 형상에 의해, 다소 스탯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게임에서는 있을 수 없던 일이다.
차의 형태로 해서 그런지, 스피드만 유난히 늘어나 있다.
라고 해도 이 AGI는 이동 속도라기보다는 전투 시 행동의 속도를 결정하기 위한 『 민첩성 』을 나타낸 수치이므로 이것이 높다고 해서 발이 빠른 것은 아니다.
뭐, 그래도 이 차와 내가 경쟁한다면 내가 이길 거라는 확신은 있지만.


「와아! 역시 루파스님! 이거라면 편히 갈 수 있겠네요.」


타산적이게도, 디나가 조금 전까지의 불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를 칭찬하고 있다.
그것에 맞추어 아리에스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쪽은 순수하고 솔직한 칭찬으로 보이기에 고맙게 받는다.
근데, 너는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 줘. 그 사이즈라고 고개를 끄덕이면 바람 굉장하니까.
캠핑카 안에 타고 캠핑카에게「북쪽방향으로 달려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것을 이해한 것인지,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목적지까지 상당히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렇지. 필요한 가구는 제가 조달해 오겠습니다.
조금 가볍게 전이해서 사올테니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디나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여전히 편리하구나, 전이 마법. 정말 부럽다.
라고 할까 새삼스럽지만, 디나는 전이가 되니까 나는 스발린에 갈 때 마차 따위 쓰지 않고 날아갔으면 됐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어차피 디나를 놓고 왔어도 전이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뭐,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지금은 아리에스가 있으니 그런 방법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런, 나는 왜 이리 뒤늦게 알아채는 걸까.
나도 나지만 얼이 빠져있구만…….



뭐, 됐어.
일단 조금 더 내부를 꾸며볼까나.




*




「하아……하아……!」


게일 화산 기슭.
그곳에서 한 소년이 다친 몸을 끌며 핏자국을 남기면서 기어 다녔다.
단지 일격ㅡ 귀찮은 벌레라도 쫓아내는 듯한 그런 존재감 없는 일격을 받았을 뿐.
그런데도, 그는 제대로 일어서는 것조차 못하고 있었다.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보기 흉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필사적으로, 벌써 없어진 상대에게서 도망 치려하고 있었다.


「루파스·마팔이……그분이 유일하게 두려워하시는 악마가 돌아왔어…….
아, 악몽이야……이런, 이런 일이…….」


적어도 300레벨이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아니면 루파스가 그의 레벨을 조금도 문제 삼지 않고 적당하게 다루었을 뿐이었기에 살았는지도 모른다.
안중에 조차 없다. 그것은 확실히 굴욕이다.
그러나 틀림없는 행운이기도 했다. 그 덕에 그는 지금 살아있으니까.


다만, 그 행운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ㅡ어머. 아직 살아있었나요.」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스가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필사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 얼굴은 역광 때문에 보이지 않았고, 하얗고 허름한 옷은 왠지 고급스러운 드레스인 것처럼 보였다.
기품이라는 것일까.
혹은 존재감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그 소녀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ㅡ 아니, 입가는 반달을 그리는 듯이 일그러져 있었고. 희열에 차있었다.


「안된다구요. 역할이 끝난 배우는 아름답게 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쓰러진 배우가 다시 일어나 등장하는 건,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구요.
역할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것이 게임의 룰입니다.」

「너, 너는……! 너는 대체…….」


소녀는 히죽, 하고 역할이 끝난 불쌍한 광대를 비웃었다.
소년의 물음에 대답해줄 가치는 없다.
저승 선물, 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귀찮은 서비스 개념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신속하고 아름답게.
마치 잡초를 뽑듯,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한 자를 지워버린다.
그 잔인한 개념만이 소녀에게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마르스. 불쌍한 인형.」



―몇 초 후. 그곳에 소년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는 않았던 것처럼 흔적마저 사라지고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행한 소녀 또한 이미 그 자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